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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고글

카페 예찬- 카페에서 정자로

by 들꽃영주 2025. 8. 24.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 카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터 속 만남의 장소였다. 일상 속 짧은 여유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의 카페는 나에게 여유를 주는 공간이 아니라 스쳐가는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퇴직 후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카페는 내 삶 속에서 점점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퇴직 후 시골집에 머물다 보면 며칠씩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이 이어지곤 했다. 아침 해와 저녁 노을, 텃밭의 작물과 마당을 찾는 새들, 그리고 쉴 새 없이 자라는 풀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풍경은 여유롭고 아름답지만, 고요가 반복될수록 세상과 멀어지는 기분이 스며든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상을 주듯 카페로 향한다. 한 잔의 커피는 세상과 나를 다시 연결하는 끈이 되고, 그날 하루는 가장 생각이 분주한 날이 된다. 그렇게 카페는 나의 ‘친한 벗’이 되어주기 시작한다.


마지막 버킷리스트였던 바이크 라이딩을 시작하면서, 카페는 본격적인 친구가 됐다. 시골길을 따라 라이딩하면서 만난 카페는 하나의 여행지요, 설렘의 장소였다.

나는 가능하면 한 번 간 카페는 다시 가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 익숙함의 안락함보다 낯선 풍경 속에서 피어나는 설렘을 택한 것이다. 그 덕분에 라이딩 루트마다 새로운 카페와 마주하게 됐고, 그곳에서 만나는 주인의 취향과 철학,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기를 누렸다.

라이딩하면서 장맛비에 흠뻑 젖은 옷을 말리며 햇살을 기다리던 영산강변의 무인카페, 드들강변의 늦은 밤까지 불이 켜진 단골카페에서 글을 쓰던 시간, 예쁜 다육이를 선물 받던 순간들은 여전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카페는 더 특별한 공간이 됐다. 집에서는 눈앞의 일거리에 쉽게 방해받기 십상이지만 카페에서는 오히려 집중이 깊어졌다. 창가에 앉아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보면, 새로운 글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연인의 사랑, 가족의 피서지, 학생의 공부방, 혼자의 사색 공간 등 카페 안에는 각자의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이지만, 그 공기 속에는 공통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카페 공화국이 됐다. 점심을 먹고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았고, 맛집 옆에는 카페가 운영되고, 식당을 새롭게 오픈하면 카페도 함께 운영한 사실을 알게됐다. 예전에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단골 손님이었는데 이제는 시골에서도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한 후 찾는 일상적인 공간이 됐다. 이제 카페는 단순히 차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파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변화고 있다. 그 공간에서 새로운 카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만남의 장소에서 작품 전시장, 시 낭송장, 공연장으로 진화되고 있다. 갈수록 개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이렇게 만남의 광장, 소통의 광장, 배움의 공간으로 이어진다면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커피를 즐기다 보니 바리스타 자격증에도 도전하게 됐고, 이제는 커피를 직접 항아리에 로스팅하는 것도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다양한 커피를 직접 추출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다양한 원두와 적당한 물 온도로 내리는 드립커피의 맛은 즐거움 중 하나가 됐다. 나는 이런 과정이 좋다. 카페 방문에서 시작된 커피가 바리스타로 이어지며 배우는 과정에서 만나는 님들과의 교류 또한 즐겁다.

바이크로 카페 투어를 다니면서 시골길을 들어서다가 자연 속에 은둔하듯 숨어있는 정자를 만나게 됐다. 필자는 그 공간을 ‘정자카페’라 부르며 또 하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카페에서 아름다운 공간에 자연그대로 역사가 만들어준 정자카페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옛 역사와 문화에서 정자를 지은 님과 나누는 침묵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정자 카페를 가기 위해서 바이크 뒷자리와 자동차의 트렁크에는 항상 다구가 준비돼 있다. 도심 카페의 분위기와 커피 맛도 좋지만 시골길에서 만난 정자에서의 찻자리는 산과 물이 함께하는 풍류를 느끼는 즐거움은 더 좋다.

도시의 카페가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춤의 쉼터라면, 정자카페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류와 배움의 공간이다. 이렇게 도심과 시골,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필자는 카페를 예찬한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누릴 수 있는 이 풍요로움과 정자에서 만들어가는 찻자리는 퇴직 후 누리는 가장 큰 사치이자, 가장 깊은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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