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는 각자의 추억이 있듯이 나에게도 미소짓게 하는 추억들이 있다. 30년 동안 여고에서의 교직생활은 나에게는 인생이라는 삶에서 여유로운 별장 생활이었다. 물론 그 속에서 갈등과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나고보니 다른 직장인 보다는 학교라는 보호 받는 공간에서 생활이기에 어려움도 즐거움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교직은 여고 이기에 전혀 다른 세상이 시작되었다. 초임 총각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이 여러 가지 골탕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퇴근 길에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한 학생이 다가오면서 얌전한 분위기를 띄우며 수줍어하며 물어볼 말이 있단다.‘선생님 혹시 저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당황해서 머뭇거리니까 갑자기 박장대소하며 ‘선생님은 성당 다니신다면서요’. 아뿔사 당했다.발음이 애매한 저가 아니라 절을 말한 것이다.그 후에 가끔 같은 질문으로 다가오는 학생에게는 군밤으로 ‘나는 성당다닌다’로 복수한다.처음으로 맡은 여고 1학년 담임은 무모한 열정으로 가득한 시기였다.겨울방학때 반 학생들을 대리고 눈내리는 무등산을 소개팅으로 만난 지금의 아내와 함께 올랐으니까 . 그 해에는 5명의 여학생이 반을 이끌어가면서 과하게 뭉쳐 다녔다. 일요일에는 5명이 학교에 나와 교실 대청소를 하고 환경정리를 다하기도 했다.너무 뭉쳐다니면서 우정을 자랑하기에 너희들을 내가 헤어지게 만들겠다는 게임을 제안했다.너무 친한 너희들이 졸업할때까지 우정을 유지하면 졸업한 날에 내가 졸업 축하 술을 사겠다고.시간은 순간으로 흘러가고 졸업한 날 잊지 않고 약속을 지켜라고 찾아온 다섯명의 소녀들 희,진경,현아,종심,선미. 그날 단골 술집 빌려서 술을 사는데 졸업생들이 춤추러 무대에 나가면 걱정되어 테이블에 있는 술을 대신해서 마시다보니 엄청 힘든 하루를 보낸 추억으로 남아있다.지금도 가끔 보기도 하고 소식을 전해 들은 그 소녀들은 50대 후반의 성실한 여인으로 지내고 있다.
교직 30년 동안 내가 좋아하는 비를 학생들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비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어진 규칙안에 비오는 날에는 조회가 없으니 지각할 일이 없고, 수업에는 과제 검사도 없고 자유로운 수업을 진행했다.비내리는 날에는 거의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준다.어느날에는 일기예보에 하교길에 비가 내린다기에 비올때까지 자율학습을 진행해서 학생들이 비오는 창밖을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맑은 날에는 혜택이 전혀 없다.2학년 담임때 자율학습 중에 한 학생이 조퇴를 해야한다기에 맑은 하늘을 가리키며 군밤 한대로 거절을 했다. 한참 후에 그 학생이 다시 와서 조퇴를 해야 한다고 창밖 맑은 하늘을 가르키는데 창밖으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학생들이 옥상에 올라가서 주전자로 물줄기를 뿌리고 있는거다. 황당했다. 그 후 이야기는 기억에 없다.가끔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내주는 복순이에게 전화와서 추억 이야기하다 그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이 옥상에서 물줄기를 뿌렸노라고. 그 후 이야기를 물었더니 내가 조퇴를 안시켜준다기에 반애들의 함성으로 조퇴를 시켜 주었노라고.
다양한 경험으로 경력있는 3학년 담임때에는 반 학생들이 체육대회에서 열심히 해봐야 조그마한 상품을 받느니 적당히 게임을 포기하고 즐기려고 한다. 줄다리기에도 온힘을 다하지 않고서 적당히 즐기는 노련한 3학년이 된다.그래서 내기를 제안했다. 이번 체육대회에 너희들을 울게 만들겠노라고.학생들은 그럴리 없다고 웃으면서 내기를 했다.그날부터 게임이 시작되었다. 어려운 시간을 내어서 배구 연습을 했다. 시간만 나면 배구를 가르쳐 주었다.체육대회가 시작되어 예선을 통과하면서도 연습을 강하게 시켰다. 학생들도 예선전을 통과하면서 점점 욕심을 갖게 되었다. 지켜만 보고 있어도 학생들 스스로 열정이 최고조로 일어나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최선을 다했다.결승까지 올라 결승전에서 연장까지가며 박빙이 되었다.마지막 세트에 듀스로 승부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상대의 서브를 허망하게 놓치고 공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모두가 정지가 되더니 울음바다가 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이겼다는 생각으로 운동장을 뒤돌아서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달려와 발을 잡는거다. 이거 뭐야 하는 순간에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아.. 이게 승리의 행가래라는 구나. 살면서 몇명이나 하늘로올라가는 희열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름다운 소녀들의 행가래를.
인생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과거의 추억도 아름답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의미있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야한다.나이 들어 치매가 오면 과거의 경험으로 보낸다고 들었는데 나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을것 같다.아름다운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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