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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고글

새벽에 만나는 책과 차, 그리고…

by 들꽃영주 2025. 5. 23.



2025. 05. 22(목) 19:43 광주매일신문

최래오 들꽃작은도서관장

새벽 두시다. 어젯 밤 열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네시간을 잔 셈이다. 고등학교 시절, 4당5락(四當五落)이라는 입시 구호에 길들여진 습관은 퇴직 후에도 내 몸과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당시 그리 좋은 결과를 낳지도 않았건만, 이 오랜 습관은 여전히 새벽이면 나를 깨운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금. 늦잠 한 번 실컷 자보려 해도 정확히 네시간 후 눈이 떠진다. 꼭 좋은 습관은 아니었다. 시골에 있으면서 출근의 부담이 사라진 후에도 하루를 지나치게 이르게 시작하는 바람에 도리어 몸이 피곤해지곤 한다. 그래서 지난 해부터는 다른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책장 앞으로 간다. 느낌이 가는대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조금이라도 졸음이 오면 슬그머니 책을 덮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수면의 흐름을 회복하며 하루 평균 7시간의 숙면을 누리게 되었고, 몸과 마음은 확연히 가벼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생각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며, 습관이 결국 인생을 만든다’라는 말이다. 이 말의 깊이를 시골에서의 생활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책장은 이제 나의 아트센터다. 각기 다른 세계를 담은 책들이 눈을 맞추며 나를 유혹한다. 오늘 새벽, 마음이 끌린 책은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였다. 책을 넘기다 ‘루이보스’라는 차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차를 즐기지만 낯선 이름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남아프리카 시더버그 산맥에서 자라는 식물로 만든 무카페인 차로 몸에 좋다고 한다. 새벽의 정적 속에서 마시기에 어울릴 것 같아 곧 바로 주문했다. 작고 소박한 소비, 루이보스 차 맛을 기다리며 도착할 때까지 작고 즐거운 기다림이 될 것이다.

매일 새로운 날이 되길 바란다. 혼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뭔가 새로운 일거리나 깨달음이 있으면 즐겁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들기도 하지만 이겨 나가는 것이 생동감이 있어서 좋다. 어제는 강한 바람과 폭우로 마당에 설치한 텐트의 타프가 날아가고 방수가 된다는 텐트에 물이 들어와 물을 퍼 내고 다시 설치하느라 애를 먹었다. 닭장은 바람과 닭들의 몸부림에 문이 열려서 닭 다섯 마리가 닭장을 나와서 닭을 잡기 위해서 온 마당을 뛰어다녀 네 마리는 닭장에 넣었는데 한마리는 행방불명 되어서 포기했다. 저녁 늦게 가출했던 닭이 어떻게 집을 찾아와 닭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날이 새면 또 그 한마리의 닭을 잡기 위한 추격전이 시작될 것이다. 시골 생활은 평범한 하루 속에 날마다 일이 생기고 할 일이 넘쳐나서 좋다.

시골 생활 10년, 내 곁을 가장 오래 지켜준 벗은 책과 음악이다. 독서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여행은 공간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여기에 자연의 소리와 선율이 어우러지면 삶은 더욱 깊고 풍성해진다. 특히 걷거나 달릴 때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바람 부는 날에는 그 바람을 따라 일부러 바깥으로 나설 때가 많다. 책 속에선 사유의 길을 걷고, 여행길에선 풍경 속 삶을 마주한다. 책을 읽으며 갇혀있는 사고의 공간에서 무한한 공간으로 시간 이동도 하고 깨우침을 얻는다. 독서는 사유로 사고의 영역을 넓혀가는 공간 이동이다. 책의 내용을 따라서 음미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여행을 떠난다. 또 여건이 허락하면 무조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는 거리의 확장으로 즐거움을 넓힌다. 내 삶은 책으로 사고의 공간을, 여행으로는 거리의 공간을 무한하게 넓혀가며 배우고 즐기는 경험이고 싶다. 거기에 소리를 더하면 더 여유로운 삶이 된다.

음악은 내 일상의 리듬이다. 잔잔한 재즈, 고요한 클래식, 자연의 소리까지 모두 나의 배경음악이 된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곁들인 음악 한 곡은 그 어떤 사치보다 값진 위로가 된다. 정자에 앉아 대나무를 스치며 흔드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청하는 순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새벽에 만난 책과 차,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조용한 일상이 하루 하루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글을 쓰다보니 선명해진 육감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 것 같다. 다시 책을 들고 잠이 드는 시점을 찾아서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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